구 분   행사
제 목   '이순신 정론' 전파를 위한 워크숍 개최
,
2017년 12월14일(목) 오후 1시 30분에 순천향대학교 대학본관 1층 스마트홀에서 덕수이씨충무공파 종회 회장 이종천,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한국부인협회아산지부장 민수영, (사)이순신리더십연구회 이사장 지용희, 충무공이순신백의종군로보존회장 박승운, 전라남도 문화관광해설사 협회장 김채림 등의 화환이 답지하고 전국 각지와 경남전남지역의 문화관광해설사, 축제관계자 120여명을 초청해 이순신 제독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를 소개했다. 


안내 현수막이 내 걸리고


이름들을 남기고


입추의 여지없이 스마트홀을 가득메우고


발표자들이 좌정하자


박창규 교수의 사회로 시작하였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임원빈 소장은 개회사에서 "우리 순천향대학교에 베풀어 주신 각별한 배려와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순천향대학교 이순신 연구소에서는 최신 이순신 연구 성과를  이순신 관련 연구, 교육, 축제 관계자 및 해당 지자체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이순신 정론' 전파를 위한 워크숍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동안
이순신 제독에 대한 연구 성과가 나름대로 축적됐지만 소수 연구자들의 전유물일 뿐 일반국민들에게는 제대로 전파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이순신을 주제로 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는 여전히 최신 연구성과가 반영되지 않은 채, 작가나 감독의 이해 수준과 눈높이에서 제작되고 방영되는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이순신연구소에서는 주기적으로 최신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전파하는 자리를 마련해 우리 국민들이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종하 산학 부총장의 환영사에 이어


'이순신 정론' 제1주제 발표자인 임원빈 이순신 연구소 소장은
. 영웅에 대한 시각 바꾸기
. 임진왜란 해전 승리요인의 재인식
. 이순신의 해전 전술
. 이순신 자살설의 문제점 등을 열거했다. 

      이순신이 유능한 장수/영웅인 이유

 열세한 상황에서 우세한 적과 싸워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언제나 우세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웠기 때문이다
.
전쟁은 과학이지 신화가 아니다.!!!

           영웅사관-기존의 기성세대들의 주류적 관점 

  영웅 한 사람이 역사를 좌우한다는 역사관

 
이순신 : 아무도 전쟁준비 안 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전쟁 준비를   
             
하고
,  이순신  스스로의 탁월한 역량만으로 모든 해전에서 승리하여 임진왜란 극복의
 
역사적 주역이 되었다
.
 
장 점 : 이순신을 추앙하고 선양하는데 나름대로 효과

->
문제점 : 우리의 자랑스런 수군의 역사, 해양의 전통 망각(忘却)과 간과(看過)

***
아직도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영웅사관의 관점에서 이순신을 이해하고 있다.



조선 수군의 승리
요인

1. 무기의 질적 차이

- 조선 수군은 일본 함선을 격파시킬 수 있는 무기(총통)가 있는데, 일본 수군은 조선의

함선을 격파시킬 수 있는 무기가 없었다
. -> 해전에서도 여전히 조총, , 칼을 사용하였다.

*
총통 : 조총*

2. 해전 전술의 차이

  첨단 총통포격전술(조선) : 재래식 등선백병전술(일본)

3. 리더 이순신(제외) : 수적으로도 우세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운 탁월한 리더 

***   승리요인 -> 첨단조선수군 + 탁월한 리더 이순신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이순신 정론 Ⅱ에서
정유재란 7주갑 되는 해 : 정리 필요 시점
1. 이순신의 성장 배경과 주요 관력(官歷)
2.
 조부 이백록(李百祿) 기묘사화(己卯士禍) 연루 참화설
3.
1차 출전시 해전 관련 쟁점
 4. 한산대첩시 조선 수군의 전력(전선 척수)
 5. 칠천량해전 관련 쟁점 등을 들었다.


'이순신 정론' 제주제 발표자인 제장명 교수는


2323(2004)"에서 ¨4646(2016)이라고 말하고

해전횟수에 대한 이순신 연구자들의 인식

- 해전의 범위에 대해 제시하지 않았다

- 20세기에 연구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것

- 해전 중 날짜가 정확하게 제시되지 못하는 해전은 제외

- 해전의 승패문제에 관해서 자의적 판단

조선수군의 해전 횟수? 이순신참가 해전 횟수?

- 이순신이 직접 전투에 참가한 경우
 
- 휘하 장수들이 지휘하여 전투한 경우
 
- 동급 지휘관과의 협조체제에서의 전투

- 통제사 이순신이 3도수군을 지휘할 때의 세부전투

이순신이 직접 전투를 하지 않았더라도 휘하 장졸들이 전투한 것을 이순신 전적에 포함

발표자의 주장

- 2009: 43385

- 2015: 45405

- 2017: 50여 회의 전투

몇 전 몇 승이라는 표현은 큰 의미 부여 불필요

- 해전횟수 정립은 여전히 진행형



'이순신 정론' 제Ⅳ주제에서 정진술 순천향대학교 선임연구원은  거북선의 연원에서 
 
 거북선(龜船) 명칭 처음 출현은

- 조선 태종 13(1413), 15(1415). 비 실전화.

과선과선(戈船)
- 1009년 동여진해적 방어용 과선75척 건조 동해 鎭溟 배치.

- 중국 춘추시대 말 처음 등장. 漢代戈船將軍 직책 등장.

- 수중으로 공격해오는 적군, 혹은 蛟龍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선체 밑에 창()을 설치한 배를 가리켰음.

- 한대의 과선, 선박 위에 창(戈矛)을 설치한 배로 기술

중국의 고대 과선은 바다의 괴물이나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선박의 밑면이나 측면

 또는 뱃전에 창을 설치한 배
.

- 고려 과선이 중국의 고대 과선과 동일한 형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적을 퇴치하기
 
위해 만든 특수군선임은 확실
.

귀선도설의 2층 높이 4.3자와 노군들의 노질 문제

- 4.3= 129cm.(영조척 130.31cm).

- 동양식 노 서서 노질. 4.3자 높이에서 자유로운 노질불가.

* 1897년 서울남자 1060명 평균 신장 163.8cm

노군들 머리 위 부분은 갑판이 비어 있는 것으로 추정됨.

거북선 높이 표시된 조선후기 수군문서 발견 - 1979년 통영

- 본판장(本板長) 길이 12(60)인 거북선 높이가 14.

* 귀선도설 거북선 본판장 64.8, 높이는 알수 없음.

  수군문서 높이 14자를 귀선도설에 적용한다면,

- 1층을 제외한 2층과 3층의 높이는 6.5.(14-7.5).

- 조선후기 거북선 높이 매우 낮았음을 암시


제5주제로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징비록 등을 열거하며

. 16-19세기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 전개 과정

1임진왜란 ~다이코기(太閤記)(16373월 이전에 간행) 성립까지 : 전쟁의 상대국이었던 중국 명조와 조선의 문헌이 들어오기 이전 단계. 일본측의 문헌들에만 의거하여 전쟁의 기억이 1차로 형성되었다.

2】『다이코기이후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1659년 간행)도요토미 히데요시보(豊臣秀吉譜)(1658년 간행) 성립까지 : 중국 명조(明朝)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1606년 서문)무비지(武備志)(1607년 기고(起稿), 1621년 완성) 등이 17세기 전기에 유입되면서, 이들 문헌에 실린 중국측의 전쟁 기억이 일본측의 담론에 영향을 미쳤다.

3】『조선정벌기』『도요토미 히데요시보이후 ~구로다 가보(黒田家譜)(1687년 성립), 조선군기대전(朝鮮軍記大全)』・『조선태평기(朝鮮太平記)(둘 다 1705년 간행) 성립까지 : 류성룡(柳成龍)징비록(懲毖錄)(1642년 간행)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1632년 간행) 등이 17세기 후기에 일본에 유입되면서, 한중일 삼국의 임진전쟁 담론이 일본에서 집대성되었다.

4】『조선군기대전』『조선태평기이후 ~에혼 다이코기(絵本太閤記)(1797-1802년 간행)에혼 조선군기(絵本朝鮮軍記)(1800년 간행)까지 : 한중일 삼국의 임진왜란 담론이 집대성된 뒤에 역사문예 등 각 분야에서 다루어지면서 일본 사회에서 확산되다가, 에도시대 후기에 번성한 역사소설 장르인 요미혼(読本) 장르의 두 문헌에 의해 결정적으로 대중화된 시기.

5】『에혼 다이코기』『에혼 조선군기이후 ~ 19세기 말까지.  

. 조선시대에 유입된 일본의 군사 문헌 정보 

①『오에이기는 조선후기 목록류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지만, 경국대전, 그리고 이칭일본전에 수록된 내용을 통해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일본어)

②『가게류의 목록(陰流之目録)무비지이칭일본전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한문 및 일본어)

③『난포문집은 원래 난포 분시의 문집이지만, 철포기를 비롯하여 그 안에 수록된 전국시대임진왜란 관련 정보로 인해 병학 관련서로서 읽혔다. (한문)

④『격조선론은 고슈류(甲州流) 병학서이다. (한문)

전국시대임진왜란 관련 정보를 담은 다이코기』・『조선정벌기』・『모리가기(毛利家記)이칭일본전에 수록된 마쓰시타 겐린의 금안문을 통해 조선시대 후기에 알려졌다. (일본어)

⑥『본조무림전17-18세기 전환기에 활발히 간행된 통속군담류의 문헌으로, 전국시대임진왜란 관련 정보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한문)

⑦『난설헌시집은 조선에서 통신사가 방일하면서, 전국시대임진왜란 관련 정보를 담고 있는 규슈 제장군기(九州諸将軍記)에 덧붙여져 간행되었다.

⑧『난바센키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상을 다루는 실록체소설. 일본어. 직접 조선인에게 보여지지는 않았으나 그 존재는 전달되었음을 설명했다.

. 조선에 유입된 일본의 임진왜란 담론

.16,19세기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에 보이는 이순신과 조선 수군

1. 고려 해전기(高麗船戦記)
2. 징비록이전과 이후 : 칠천량 해전의 경우와 이순신
  19세기 중기의 조선정벌기에 그려진 이순신. 발표자가 확인한 16-19세기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 삽화 가운데 이순신의 모습이 가장 크게 그려진 것과 에혼 다이코기에 그려진 이순신 수군의 승리 모습 등을 발표했다.


상기와 같이 발표한
 ⊙
영웅 이순신에 대한 관점 바꾸기, 임진왜란 해전 승리 요인의 재인식, 이순신의 해전 전술, 이순신 자살설의 문제점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이순신 가문의 경제환경, 조부 이백록 기묘사화 연계 문제, 임진왜란 해전 관련 쟁점, 정유재란 해전 관련 쟁점(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
이순신의 해전 참전 횟수, 1차 출동 출전 경로, 명량해전 관련 쟁점, 노량해전 관련 쟁점(제장명 해사 해양연구소 연구위원)
거북선의 연원, 거북선의 상장구조 및 편제와 무장, 이순신 제2차 백의종군로 고증 관련 쟁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시 명나라 참전 병력(정진술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선임연구원)
16-19세기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에 보이는 이순신과 조선 수군, 징비록이 일본인들의 이순신과 임진왜란 인식에 미친 영향(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20여 개 주제에 대한 이순신 정론이 다뤄졌고 이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정병웅 교수가 좌장으로 많은 질의응답이 오고갔다.












플로어에서 예리하고 근본적인 문제 등 많은 질문이 있었다.

 
정정공 종회 원로회
충무공 불천위제례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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